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삼다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가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아마도 한국 최초로 정신병을 대대적으로 다루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한국을 기준으로 잡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병원이 메인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흔치 않습니다. 보통 미국에서 병원을 다룰 때는 외과를 다룹니다. 칼질로 수술을 할 때의 긴장감을 연출할 수 있고, 수술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짜릿함도 없지 않죠. 수술이 성공했다고 밝히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거기에 감격하는 환자의 친지들을 보여주면서 한 에피소드에서 감동을 이끌어내기도 쉽구요.
미국 드라마인 <하우스>는 다른 접근을 하긴 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병원 안에 있는 진단의학과를 다루죠. "병"이라는 미지의 빌런이 존재하고, 주인공들은 그 빌런의 정체를 찾아나가는 형사의 역할을 취합니다. 배경이 병원일뿐, 사실상 형사물에 가깝죠. 범인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범인이 에피소드 중간 중간에 '범죄'를 저지르며 환자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전통적인 형사물에서 범인은 에피소드 중간중간에 사람을 계속 죽이고 다니죠. 그래서 형사물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주로 메인 빌런으로 등장합니다. 희생자가 한 명이어선 극을 유지하기가 힘들거든요.
미드 <ER>, <그레이스 아나토미>, <하우스> 등이 배경을 병원으로 잡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병원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오거든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오는 공간이니 작가는 그 새로운 인물들로 계속해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시즌제 드라마들이 병원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죠. 희로애락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몇 안되는 곳이니까요.
정신병원 역시 배경으로서 훌륭한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곳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오는데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오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만 봐도 '모'의 집착적인 사랑 때문에 본인이 혼자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된 사람, 대기업에서 수많은 업무를 떠맡다보니 공황 장애를 가지게 된 퇴사자, 상사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세상에서 본인의 역할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 워킹맘으로서 너무도 힘든 삶을 살아오다보니 치매끼가 온 사람, 시험에 계속 떨어지다가 현실을 도저히 마주할 수 없게 되어 망상에 빠진 공시생 등이 등장합니다. 정형외과나 대장항문외과가 배경이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환자들을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다룰 수 없었겠죠. 물론 작가의 역량에 따라 배경과 상관 없이 훌륭한 에피소드를 풀어낼 수는 있겠지만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좋게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이 드라마가 대놓고 정신병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정신병이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가진 입지를 생각할 때, 정신병을 단순히 의지의 부족이라고 여기는 한국의 흔한 정서를 고려할 때,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 건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용기가 가상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가 아니면 이런 드라마는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구요.
정신병에는 섬세하지만, 로맨스에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정신병을 다룬다는 부담 때문에서인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로맨스가 들어있습니다. 원작 웹툰에 로맨스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얼마든지 원작과 다르게 갈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굳이 로맨스를 넣어서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한 듯 보입니다. 정신병을 다룬다는 것에서 용기를 부리면서 살짝 앞으로 나아갔으나, 잠시 주춤하면서 뒷걸음친 결과가 이 로맨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과 박보영의 친구와 대장항문외과 남의사는 삼각관계를 가지는데, 이 전형적인 삼각관계는 드라마에서 빠져도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또, 다른 플롯에서도 러브러브한 관계가 있습니다. 박보영의 과외선생이었던 의사 한 명은 박보영과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데, 이 역시 드라마에 그다지 잘 달라붙는 느낌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되도않는 로맨스를 다루면서, 드라마는 정신병을 다룰 때의 섬세함을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정신병을 다룬 작가가 따로 있고, 로맨스를 다룬 작가가 또 따로 있었거나, 작가 안의 두 개의 자아가 다투다가 나온 게 이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의 한남 로맨스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연출가가 문제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죠. 정신병만 가지고는 드라마가 성립이 안된다면서 억지로 로맨스를 끼워넣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보영을 욕망하는 두 남자의 삼각관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코멘트할 게 없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우연이 남발하는데, 우연이 남발하는 거야 한국 드라마의 종특이니 뭐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제가 문제 삼으려는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 역시 다른 드라마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문제적 장면들의 반복이긴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좀 변하지 않았나 싶어서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