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화요일에 퇴사를 했고, 그 전날인 월요일에는 면접도 봤었습니다. 광고회사의 AE로서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면접은 꽤나 신기하게 진행됐습니다. 면접관은 한 명이었는데, 제게 궁금한 것이 별로 없더군요. 계속해서 그는 광고회사의 AE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냐고 묻고, 그 일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장광설을 풀어냈습니다.
장광설이 길어질수록 슬슬 감이 왔죠. 이 회사에는 퇴사자가 겁나게 많고, 나는 그 빈자리에 지원을 한 것이고, 이 회사는 퇴사를 또 한번 감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는 걸요. 퇴사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역설한 겁니다. 물론 당근을 던지는 것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600만원, 900만원을 버는 사람도 있고, 천만원, 2천만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고 했죠. 이런 사람이 다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했죠. 처음에는 기본급 210만원이 나가지만,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즉, 제가 얼마나 광고를 많이 따오는지에 따라 봉급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210만원이면, 마, 콜센터에서 받던 금액과 유사한데, 광고 영업이라는 걸 주위에 둘러보는 일의 강도는 콜센터보다도 강한 듯한 느낌이 들고, 그 일이 제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결국에는 "입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는 식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마 하겠다고 했으면 붙긴 했을 거에요. 그 사람들은 퇴사 안하는 신입이 간절했거든요.
광고 회사 이후에는 입사 지원을 하는 것을 일단은 멈췄습니다. 퇴사한 회사의 경우(두번째 회사였는데), 지원하면서도 쎄했지만 그럼에도 붙을 거란 확신이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쎄했던 이유는 이 회사의 퇴사율이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7월부터 10월까지 있었는데, 이 짧은 기간동안 같은 팀에서 퇴사하는 사람을 셋이나 봤습니다. 이 회사는 코인 거래에 익숙해지라면서 실전 매매를 시킵니다. 그러면서 15만원을 쥐어주는데, 이 실전 거래 코스에서 두 분이 퇴사했습니다. 코인 거래 같은 걸 직접하기 싫어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떤 여성분은 그냥 일주일 정도 일하더니 저는 모르는 어떤 이유로 퇴사하셨죠. 회사를 마구잡이로 지원하다보면 이런 회사에도 붙게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원을 멈춘거죠. 법정 아재가 아무나와 인연을 맺지 말라고 했다던데, 이는 입사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 회사와 인연을 맺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해롭습니다.
일단은 제가 88년생으로서 나이도 있고하니 붙을지 안 붙을지는 모르겠지만, 넷마블과 펄어비스에서 기획 직군으로 지원을 해볼 생각입니다. 게임 회사에 문과가 지원하려면 갈 수 있는 파트가 기획 뿐이 없더군요. 제가 사랑해마저 않는 미야자키 히데타카옹 역시 문과였습니다만, 프롬소프트웨어에 입사를 하면서 게임사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결국 현재는 프롬소프트웨어의 사장이 되었고, 게임업계에서 평생공로상도 수상했죠. 저도 그런 루트를 밟고 싶습니다. 문과지만, 게임 기획으로 게임사에 입사한 뒤, 게임을 직접 만드는 일에 참여해보는 거죠.
단순히 게임업계에 들어가고 싶어서 취업을 '멈춘 것'은 아닙니다. 이 나라의 일자리들이 대부분 형편 없습니다. 광고 영업 뛰는 일을 만약 했다면 전 아마 몇 개월간 210만원을 받으면서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계속 들었겠죠. 210만원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 자리가 빈자리로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돈을 겁나게 조금 주니까요. 야근이 없다는 걸 대단히 자랑스럽게 말하던데, 글쎄요, 210만원이면 당연히 야근은 없는 게 맞습니다.
광고영업이 아닌 언론계에 발을 들이는 것도 고려해봤습니다만, 이것도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닙니다. 대부분 회사들이 사람인을 통해 회사에 지원할 수 있게끔 하고 있는데, 언론사들은 채용 공고를 사람인에 올리지도 않고 그렇다보니 사람인을 통해 지원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언론사에 들어가려면 자소서를 다시 다 써야 하고, 어차피 쓰지도 않을 토익 점수를 새롭게 갱신해야 하고(기자 친구들 중에 업무 중 영어 쓰는 아해를 본 적이 없다), 서류가 통과하면 또 작문, 시사 등의 시험을 치뤄야 합니다.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면 앞에 치뤘던 시험들과는 전혀 무관한 업무들을 떠않게 되겠죠. 매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사이트나 위키트리 같은 인터넷 매체에 들어가면(얘넨 언시도 없지만) 자극적인 쓰레기들이나 양산해야 될 겁니다.
하지만 지면이나 채널을 가지고 있는 매체에 들어가면 꽂아주는 곳으로 가서 여의도나 용산 앞에서 뻗치기하며 기사들을 찍어내게 될테죠. 이건 차라리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뭐랄까, 돈도 더 줄테고 더 있어보이거든요. 워라밸은 시망일 수도 있지만, 돈도 벌고 있어보인다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개팅 나가서 "콜센터에서 일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너도 알고 있는 그 회사인 XXX에 다닙니다."라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니까요. 이런 걸 대형 언론사들이 아니까 아직도 "언론고시"라 불리는 쓰잘데기 없는 갑질을 계속 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언론사에 소위 '명예'란 것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하거든요. 저 역시 그 믿음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고.
한국에서 회사에 들어가지 않는 2030들이 126만 명정도가 되고, 이 중에서 대졸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들이 취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원하는 직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중소기업들은 형편없는 임금을 주면서 사람을 쓰려고 하니 취업을 하지 않는 거죠.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버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축한 돈이 일부 있으니 11월부터는 약속도 잡지않고 물건도 구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팔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뭔가가 잘 풀리지 않으면 저 역시 자존심을 바닥으로 내려놓고, 뭔가를 하러 나가겠죠.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글을 보내기 위해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이나 두드리고 있는데, 이 생활로는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지 않으니 참으로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뒤질 순 없는데 말이죠. 김동률의 <황금가면>을 들을 때인듯 합니다. "내 역할이 맘에 안 들어 이렇게 맥없이 쓰러져갈 하찮은 내가 아니지" |